한자서체(漢字書體)의 종류와 변천사
중국 한자의 서체 변천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 문자이다 보니 그 변천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1) 전서(篆書)
- 전서는 갑골문, 금문, 석문 등과 대비하여 말할 때는 전문(篆文)이라고도 한다.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과 대비하여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전서라고 한다. 한자서체는 대략 갑골문 금석문 간문, 백문, 전서, 예서, 해서, 간체자 등의 순서로 발전하였다. 행서와 초서는 예서와 해서의 필기체의 일종으로 보완적 서체이다.
① 대전(大篆) -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전서(篆書, 篆;새기다, 도장, 꽃무늬)는 대전과 소전으로 나뉘는데, 대전(大篆)은 청동기 시대 주(周)나라 의왕(宜王) 때 태사(太史) 주(姝)가 갑골문(甲骨文)과 금석문(金石文) 등의 옛 글자체를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대전체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시황 떼 소전체로 글자를 정리하여 통일할 때까지 쓰였다. 공자님이 쓰시던 글자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자님이 21세기에 환생하신다면, 아마도 논어를 잘 읽지 못하실거라고 생각한다.
② 소전(小篆) - 진나라
주나라 후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대전체가 성립된지 오래되어 나라마다 글자체가 조금씩 다르게 변하면서 서로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진(秦)나라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나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그 동안 각 나라마다 다르게 쓰던 각종 글자체를 통일하고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재상 이사(李斯:?∼BC 208)가 대전체를 간략하게 하여 문자를 정리할 것을 황제에게 주청하였다고 한다. 이제까지 여러 지방에서 쓰던 각종 자체(字體)를 정리하고 간략하게 다듬어 통일한 글자체가 소전체(小篆體)이다.
(2) 예서(隸書) - 한나라
우리에게 익숙한 한자체에 가까운 예서(隸書, 隸;종, 예속, 죄인)는 진나라에서 당시 공식서체였던 전서(소전,小篆)와 함께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전서를 간략하게 해서 사무용으로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글자체가 예서이며, 예라는 뜻은 전서에 예속된 글자체라는 뜻이라고 한다. 노비가 만든 글자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당시 기준으로 볼 때, 노예도 쓸 수 있을 만큼 쉬운 글자체가 성립한 것이다. 예서가 대세를 이룬 시기는 한나라 때부터이며, 전한 말기(BC 1세기경)에 완성되었다. 한(漢)의 무제(武帝) 대에 국가의 공식 글자체가 되었다.
(3) 해서(楷書) - 남북조, 당나라 초기
해서(楷書, 楷; 모범, 본보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자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후한 말기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위 ·진(魏晉)시대를 거쳐 남북조(南北朝)시대에 이르러 그 때까지 주로 쓰였던 예서체를 해서가 대체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 해서를 금례(今隷), 즉 '당대에 쓰이는 예서'라고 불렀는데, 해서가 예서로부터 진화 발전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해서의 전형은 당나라 초기에 완성되었다.
(4) 행서(行書) - 위진시대 이후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도 있는데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중요한 글자체는 아니다. 행서는 예서나 해서의 필기체이다. 일상에서 널리 쓰였지만, 정서(正書)인 해서체의 보완적인 글자체로 쓰였다. 후한 말기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해 진(晋)의 왕희지(王羲之)에 의해 그 틀이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서와 해서두 가지 모두 거의 비슷한 시기인 위진시대에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5) 초서(草書) - 한나라 이후
초서(草書)가 전한(前漢) 무렵에 전서(篆書)의 필기체로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전서를 간략하게 쓰는 고초(古草)와 예서를 간략하게 쓰는 장초(章草)가 초서의 조기 형태라고 한다. 초서는 글자의 윤곽이나 일부분만을 흘려서 나타내 빠르고 간단하게 쓸 수 있지만, 글자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실용성을 잃고 서예로서의 가치만 지니게 되었다.
(6) 간체자(簡體字) - 현대 중국
중국은 1946년에 한자의 자획을 간략화하기 시작하여 1956년에 한자 간화방안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현재 쓰고 있는 간체자는 중국 문자 개혁 위원회가 1964년에 공포한 인쇄 통용 한자자형표(印刷通用漢字字形表)에 의거한 것이다. 한편, 그 이전에 쓰이던 글자체를 간체자와 대비하여 번체자(繁體字)라고 부른다.
우리는 해서체에 익숙하고,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한문고전들이 해서체로 되어있어 간체자를 보면 별로 반갑지 않다.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한자 자형의 변천사를 보면 곧 간체자가 표준으로 정착할 수도 있다.
문제라면 우리말 발음상으로 서로 다른 글자가 중국어로는 뜻과 발음이 같아서 한 글자로 통일해 버리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 등 이웃집 사정도 고려해서 간체자를 정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 발음 상 어(於)와 우(于)가 어조사로 쓰일 때 중국어로는 뜻과 발음이 같아서 한 글자로 통일해 버리는 등 우리로서는 좀 아쉬운 부분이 종종 있다.
욱(郁; 융성하다)자와 울(鬱; 울창하다)자는 우리 말에서는 서로 다른 한자인데, 중국에서는 두 글자를 욱(郁)자로 통일해 버렸다. 한약재로 쓰이는 욱리인(郁李仁)이 언젠가 울리인으로 변할지 모르겠다.
2) 매체에 따른 분류
매체에 따른 분류이지만, 한자 서체의 발전과정이기도 하다. 한자서체는 대체로 갑골문(甲骨文), 금석문(金石文), 간문(簡文), 백문(帛文), 전문(篆文, 또는 전서) 순으로 발전해왔다.
(1) 갑골문
갑골문에서 '갑'은 귀갑(龜甲) 즉 거북의 배껍질이며, 골(骨)은 소의 어깨뼈나 다리뼈를 의미한다. 여기에다 글씨를 새겼다고 해서 갑골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거북 등껍질에는 글을 새기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배 부분의 껍질에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상(은)나라 시대에 쓰여진 한자의 원형이 되었던 글자들을 가리킨다. 같은 시대에 죽간과 목간이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2) 금석문
금석문은 금문 석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갑골(甲骨) ·간독(簡牘:木簡 ·竹簡) ·봉니(封泥) ·토기(土器) ·와전(瓦塼:기와 ·벽돌) 등 딱딱한 매체에 쓰여진 모든 글을 통칭해서 금석문이라고도 한다.
금문은 당연히 청동기 시대의 산물이고, 석문을 새기기 위해서는 돌보다 강한 도구가 필요했을 것이므로 청동기나 철기시대에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① 금문(金文)
쇠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금문이겠지만,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초기에 쓰여진 글자를 말한다. 비단과 죽간 그리고 종이가 보편화되면서 쇠판에 글을 새기는 일은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② 석문(石文)
석문은 중국(中國) 주(周)나라 때의 북 모양(模樣)으로 된 석각(石刻)인 석고(石鼓)나 진(秦)나라 시대의 각석(刻石)에 새겨진 글자와, 역대의 비문 ·묘지명 ·조상비(造像碑) 등에 새겨진 글자이다.
(3) 간서(簡書) 또는 간문(簡文)
종이가 보편화되기전 대나무를 잘라 만든 죽간(竹簡)이나 나무조각으로 만든 목간(木簡)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글씨를 쓰는 판으로 이용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책(冊)이라는 한자도 이 죽간이나 목간으로 된 책의 형상에서 따온 것이다. 책의 단위를 나타내는 '권(卷)’이라는 글자도, 죽간을 엮은 책을 운반하거나 보관할 때는 돌돌 말아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돌돌 말린 책의 형상에서 온 글자이다.
출처; 한자자원입문(왕홍위안지음 윤창준번역, 어문학사)
책이라는 글자가 갑골문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거북이 배껍질과 함께 죽간이나 목간이 동시에 쓰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위 그림에서 오른 쪽 끝에 있는 '전문'은 대전체와 소전체 등을 가리키는 말이며 대전체는 공자시대에 사용했던 글자체이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묘에서 발견된 죽간에 쓰여진 노자(郭店楚墓竹简老子)
위편삼절(韋編三絶, 韋 가죽 위, 編 엮을 편, 三 석 삼, 絶 끊을 절)이라는 말은 공자(孔子)가 만년(晩年)에 주역(周易)을 공부하면서, 어찌나 읽고 또 읽고 했던지 대쪽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공자 시절의 책은 대나무 조각을 가죽끈으로 엮은 책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보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고 할 때 이는 시적 비유와 함께 약간의 과장의 의미가 들어간 표현으로 보이지만, 죽간책을 고려하면 사실 얼마 되지 않는 양일 수 있다. ‘오거서’라는 말은 장자에서 따온 것이다.
나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상한론] 죽간본이, 어느 날 도로를 건설하거나 건물을 짓는 도중에 문득 발견되는 것이다.
(4) 백서(帛書) 또는 백문(帛文)
비단 위에 글씨를 써서 만든 문서와 여기에 쓰인 글자체를 백서(帛書, 帛; 비단 백) 또는 백문(帛文)이라고 한다. 죽간 목간에 뒤이어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본격적으로 종이를 이용하여 글씨를 쓰기 전까지, 죽간 목간과 함께 비단이 널리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자 마황퇴백서 을본
종이의 발명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미래 어느 날엔가 전자문서가 종이를 대신하더라도 종이책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전자문서는 보존이 취약하고 위변조가 너무 쉽다는 특징이 있다. 앞으로 이런 말이 나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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